독자 여러분들은 혹시 ‘e스포츠’ 라고 들어보셨을까요?

임요환이나 페이커라는 이름은 어쩌면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현재 대한민국은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e스포츠 강국이자 종주국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스타크래프트가 PC방을 점령하던 시절부터, 리그 오브 레전드로 전 세계를 제패한 오늘날까지, 이 작은 반도는 신기할 정도로 언제나 게임 전장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좌) 10만 관중을 동원한 2005년 스타리그 결승전 / (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낸 LOL 국가대표 선수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물음표는 따라붙습니다.

??? : 인기 많은 건 알겠어,
페이커 대단한 것도 알겠는데..
그게 진짜 스포츠야..?

필자의 경우 LCK(리그오브레전드 챔피언스 코리아)의 팬이라 e 스포츠도 스포츠다! 라고 자신있게 말씀드리고 싶지만… ‘손목 아래로만 움직이는게 스포츠가 맞냐’, 라는 조소 섞인 물음에 대한 반론은 쉽사리 떠오르지 않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상을 해볼까요?

💡 만약 손가락이 아닌, 온몸을 써야만 하는 게임이라면? 더 나아가서 피지컬과 피지컬이 맞붙는, 가상의 콜로세움이 열린다면?

이번 아티클에서는 e스포츠가 가진 한계점과, VR 기술이 그것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그리고 ‘디지털 콜로세움’의 가능성에 대해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페이커’ 이상혁 선수는 아시안게임이 끝난 후 인터뷰에서 ‘e스포츠도 스포츠인가’ 라는 질문을 받은 바 있다. (출처 : 데일리e스포츠)

위 질문에 대한 ‘e스포츠의 전설’로 불리는 페이커의 답변은 다음과 같습니다.

“경기를 하고 준비하는 과정이 많은 분께 좋은 영향을 끼치고, 경쟁하는 모습이 영감을 일으킨다면 그게 스포츠로서 가장 중요한 의미라고 생각한다.”

단단한 답변임에는 분명합니다. 당시 해당 인터뷰 내용은 많은 이들의 공감을 자아냈고, e스포츠가 하나의 진지한 ‘경쟁의 장’이라는 점을 다시금 부각시켜 주었습니다. 그러나 다소 모호하고 말랑한 기준이라는 생각은 떨칠 수 없습니다. 과연 스포츠의 ‘기준’ 은 무엇일까요? ‘기준’ 이라는 것이 존재하기는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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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배틀그라운드 모바일' 대표팀이 결승전에 진출했다.

e 스포츠가 스포츠가 되는 것을 가로막는 가장 큰 벽은 바로 터져나오는 비웃음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대부분의 e스포츠는 소위 말하는 ‘피지컬’ 요소가 필수적입니다만…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손가락만 움직이는게 피지컬인가, 라는 의문을 가집니다.

전통적인 스포츠는 단순한 엔터테인먼트를 넘어서 사람들에게 환희와 감동을 주는 것이 가능한데, 여기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이 육체의 움직임, 즉 피지컬입니다. 한계를 넘나드는 몸의 긴장감, 땀과 호흡, 폭발적인 액션들이 경기를 구성하고, 관객은 그 움직임을 보며 함께 긴장하고 환호하죠. 움직임은 곧 감정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현재 대부분의 e스포츠는 피지컬적인 부분이 아예 부재하기 때문에, 조소나 냉소로부터 자유롭기는 힘들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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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무협지 속 무술가가 되어 기공을 쓰고 돌을 날리는 게임 Rumble (출처 : Youtube)

Rumble은 손이나 팔 등의 신체 움직임을 그대로 기술로 연결하는 방식으로, 게임의 스킬을 익히는 과정이 무술을 처음 배울 때의 느낌과 흡사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그냥 버튼을 누르는 것이 아니라, 내 자세, 타이밍, 거리감까지 전부 실제 나의 몸 움직임에 달려 있는 거죠. 보통 게임에서 입력이 잘 안 먹히면 똥겜 소리 듣기 십상인데, Rumble은 정반대입니다. 입력이 안 되는 건 게임 탓이 아니라, 내 몸이 못 따라가서 그렇다는 걸 인정할 수 밖에 없다는 거죠. Rumble은 똥겜이 아니라, 내가 똥손이자 똥몸이었다는 걸 정직하게 알려주는 게임입니다. 이런 게임의 등장은 플레이어가 게임 실력을 키우기 위해 온몸을 훈련하고 활용해야 하는 새로운 형태의 e스포츠를 상상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구독제가 항상 경제적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장기 이용 시 누적 비용이 단건 구매보다 훨씬 커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Adobe의 프로그램들은 과거에는 일회성 구매가 가능했지만, 현재는 월 3만원 또는 그 이상 구독료를 요구합니다. 단 2~3년 이상만 사용하면 과거 영구 라이선스 가격을 훨씬 초과하게 됩니다. 이에 따라 일부 전문가들은 구독제를 "소액 반복 결제를 통한 지속적 수익 창출 장치"로 분석합니다(HBR, 2021).

올해 7월 25-27로 예정된 리그의 가장 큰 대회 VRML CON. 2000 달러 상당의 우승 상금이 준비되어 있다.

이러한 ‘피지컬 기반 e스포츠’는 단지 상상 속 이야기 만은 아닙니다. 이미 다양한 VR 게임들이 실제 무대에서 경쟁의 장을 만들어가고 있으며, 그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가 바로 VR Master League (VRML) 입니다.

VRML은 2017년에 설립된 커뮤니티 기반의 VR e스포츠 리그로, Onward, Pavlov, Echo Arena와 같은 다양한 VR 게임을 중심으로 전 세계 플레이어들이 팀을 구성해 경쟁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선수들은 실제로 몸을 움직이며 플레이해야 합니다. 시야를 직접 돌리고, 몸을 숙이거나 피하며, 손으로 무기를 꺼내 조준하는 등 신체 움직임과 반응 속도가 실력의 핵심이 됩니다.

현재 VRML은 평균 주간 활동 플레이어 수가 무려 5,000명을 넘어섰고, 누구나 팀을 구성해 참여할 수 있는 오픈 리그 형태를 지향하며, Discord 기반의 커뮤니티 문화도 활발하게 유지되고 있습니다. 관전 방식 역시 기존 e스포츠와는 다르게 구성됩니다. VR 시점에서 펼쳐지는 몰입감 높은 중계 방식은 관람자에게 새로운 스포츠 경험을 제공합니다. 실제로 VRML은 Twitch와 YouTube를 통해 정기적으로 경기를 중계하고 있으며, VR의 특성을 살린 시청 경험을 발전시키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영화 글래디에이터 中 (출처 : DreamWorks Pictures)

앞선 사례들에서 볼 수 있듯이, XR 기술과 함께 진짜 '몸으로 하는' e스포츠가 점점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조금 더 상상해보면 어떨까요? e스포츠는 언젠가 '디지털 콜로세움'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