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부끄러운 듯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 사진: Pixabay

우리는 다양한 전자기기를 통해 디지털 공간에서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그런데 그 안에서 존재하는 나는 진짜 나일까요? 아니면 조금은 가려진 모습일까요? 어떤 사람은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해, 또 어떤 사람은 더 멋지고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자신을 숨깁니다. 사실 이건 단순히 숨는 것이 아니라, 또 하나의 나를 만들어가는 과정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숨기고 싶어 하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누군가는 현실에서의 상처나 실망을 덜어내기 위해, 또 다른 누군가는 사회적인 규칙이나 기준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표현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하죠. 또 어떤 사람은 단지 새로운 자아를 실험해보고 싶은 호기심에서 출발하기도 합니다.

심리학적으로 ‘익명성’에 대해 접근한다면 자아 방어 기제 중 하나로 볼 수 있는데, 타인의 평가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본능적인 반응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특히 사회 심리학자인 레온 페스팅거(Leon Festinger)의 '사회적 비교 이론'에 따르면,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상대적으로 열등함을 느낄 때 자기 노출을 회피하고 싶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럴 때 익명성은 물리적 존재를 드러내지 않고도 상호작용이 가능한 대안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또한 익명성을 나타내기 시작하면 실제보다 더 유연한 자아 실험이 가능한 특성이 있기 때문에, 자신의 성격이나 외모, 성별, 정체성 등을 다양하게 실험해보려는 심리가 작동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심리는 '플레이 이론' 또는 '확장 자아 이론'과도 연관되며, 사람들은 실제 자아와 이상적 자아 사이의 간극을 줄이기 위해 자아를 설계하고 표현하는 데 몰입하게 됩니다. 즉 익명성이 보장되는 곳에서는 현실에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나 취향도 상대적으로 쉽게 드러낼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더 쉽게 '숨을 수 있는 공간'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베네치아 사육제. 두 사람이 가면을 쓴 채 서로를 응시하고 있다. 베네치아에서는 매년 사순절 기간 동안 가면을 쓰고 무도회를 즐기는 ‘가면 무도회’가 열린다. 사진: 위키백과

디지털 기술이 등장하기 전에도 사람들은 자신을 숨기거나 보호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사용해 왔습니다. 고대에는 축제에서 가면을 쓰고 자유롭게 행동하기도 했고, 중세 베네치아에서는 귀족이나 시민이 신분을 감추기 위해 가면을 썼습니다. 카니발 기간 동안 신분을 가면 뒤에 숨김으로써 사회적 계층을 초월한 교류를 즐겼는데, 누구나 익명으로 파티에 참여하여 평소 억눌렸던 행동의 자유를 만끽하기 위함이었죠. 이런 가면은 단순히 얼굴을 가리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졌습니다. 신분의 제약을 벗어나 자유롭게 어울리고, 평소에는 할 수 없는 말을 할 수 있는 '사회적 탈출구'였던 셈입니다.

- 중략 -

메타의 새로운 아바타. 사진: Meta

어쩌면 나를 숨기기에 가상세계보다 더 완벽한 공간이 없을 것 입니다. 가상현실(VR), 확장현실(XR), 그리고 메타버스 공간에서는 사람들은 '아바타'를 통해 자신을 표현합니다. 이 아바타는 꼭 현실의 나와 닮을 필요는 없습니다. 원하는 성별, 머리색, 패션 등으로 꾸밀 수 있고, 심지어 동물이나 상상 속 캐릭터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메타(Meta)에서는 아바타에 디지털 명품과의 콜라보로 패션의 폭을 넓히기도 하며 아바타의 다양화를 추구하였습니다. 이처럼 메타버스는 현실보다 더 자유롭게 나를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샘 올트먼(왼쪽) 미국 오픈AI CEO(최고경영자)의 실제 사진과 그가 지난 27일 X(구 트위터)에 올린 일본 애니메이션 제작사 ‘스튜디오 지브리’ 화풍의 초상화. 사진: X(구 트위터)

최근에는 AI가 혁신적인 발전을 이룩하며 OpenAI 같은 인공지능 회사들이 만든 프로그램을 통해 텍스트만 입력하면 나만의 캐릭터를 그려주는 서비스도 프로필 사진으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브리 애니메이션에 나올 것 같은 내 모습’을 만들어주는 기능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 이미지를 프로필 사진으로 사용하며, 자신이 되고 싶은 이미지로 자신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기술은 단순한 재미를 넘어서, 사람들이 스스로 원하는 자아를 만들고 그걸 SNS나 메신저에서 공유하는 데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단순히 '진짜 나'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보여주고 싶은 나’를 직접 그려내는 시대에 이르렀습니다.